대학언론은 지금까지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길을 모색해왔지만, 여전히 학우들의 무관심과 학교로부터의 탄압에서 살아남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학언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대학언론은 어떠하였는지, 현재의 이르기까지 대학언론은 어떤 길을 걸어 왔으며, 공론장에는 어떤 담론이 오가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대학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동안 대학언론이 스스로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아왔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의 흐름을 관찰하다 보면, 미래의 대학언론은 어떨 것인가를 어렴풋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대학신문'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1975년 2월 3일자 연세춘추, 권력에 귀속된 언론을 비판하고 있다. ⓒ연세춘추
1950년대는 많은 대학언론들이 창간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본래 각 대학은 대학사회의 소식을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창간을 했으나, 대학 차원의 업적을 대외에 홍보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활용했다. 1912년 숭대시보를 시작으로, 1960년까지 32개 대학에서 대학신문이 창간되었다. 당시 신문학과 학생들도 실습과 괴외의 일환으로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각 단과대학 학생회에서는 자치독립신문을 발행하여 학생 활동에 대한 홍보와 단과대 소식을 전했다. 이러한 초기 창간시기에는 대학 신문사가 학교의 홍보지처럼 운영되는 일도 잦았다. 대표를 학교에서 임의로 임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는 편집권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대학언론이 언론이라는 인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대학언론의 권리가 존중되고, 언론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은 민주화운동 시기부터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4.19혁명의 영향으로 학생들의 의식이 고양되고 학생자치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이 때문에 대학언론은 이전과는 달리 사회비판적 성격을 띄기 시작했으며,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학생들의 민주화운동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한일 굴욕외교 반대, 개헌 반대, 전태일 열사 추모 시위, 군사훈련 반대, 위수령 발동, 유신 헌법 발효, 긴급조치 7호 등 사회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대학언론은 지속적인 학생 담론과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영역을 가감없이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사례에는 인혁당 사건을 보도한 연세춘추가 있다. 이러한 대학언론의 움직임에 군부정권은 검열과 기자 교체, 기자의 제적 처리 등으로 통제하기도 했다.
1980년 5월 10일 전남대학교 정문 ⓒ5.18민주화운동기록관
1990년대 캠퍼스에 배포되던 신문 ⓒ동아닷컴
이후, 박정희 정부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친 대학사회는 사회비판을 넘어 보다 주체적으로 학술지 역할까지 소화해내는 언론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이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대학언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자치언론인 고대문화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며, 대학언론이 아닌 학생운동의 이론지로 포지셔닝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천안문 사태,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에 이은 소련 붕괴 등의 국제적 사건이 있었던 시대이다. 이에 기존의 논조를 바꾸는 것이 불가피해진 대학언론은 스스로의 미션을 새롭게 규정짓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진보적 성향에 편중되었던 편집 방향을 제고하고, 보다 보편적으로 읽히는 언론을 지향하는 시대적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식어갔으며, 외환위기가 도래하고, 개인주의화, PC통신의 도입 등으로 인해 20세기의 대학 공동체 문화는 빠르게 소멸되어갔다. 이 때부터 대학언론들은 어떤 언론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대학언론은 줄곧 민주화운동과 함께했다. 한국 사회에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정치적 억압, 군부 독재의 폭력이 이어져 왔는데, 그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의 작은 가지가 대학언론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과거의 대학언론은 대학생들만을 위한 언론으로 입지를 굳히지 않았으며, 범 사회적인 ‘운동’을 했다. 다만 운동의 방법이 언론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이 났다. ‘대학언론이 위기’라는 키워드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검색하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2년부터 기사가 쭈욱 나올 정도로 진부한 소재이다. 기성 언론도 약 40년 전의 ‘대학언론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절’ 같은 것은 더는 찾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대학사회의 공동체는 위기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황폐화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보다 더 확실한 멸망에 다가서고 있다. 당장 일부 대학은 후보자 없음으로 학회, 학생회가 선출되지 않으며 비상대책위원회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언론 역시 각 종 보도를 내놓아도 학교 본부와 학생회로부터 탄압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루를 머다하고 교직원에게 호출당하는 것은 물론, 예산 삭감과 강제 폐간, 기자 해임 등의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 현대 대학언론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성신퍼블리카와 외대알리 ⓒ가톨릭대학보
2012년, 동시다발적으로 창간된 독립언론들 ⓒ한겨례21
2010년도 들어 각 대학에는 독립언론 탄생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각 대학의 대학언론인들이 학보사 체제의 한계를 절감하고,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껴 제각기 독립언론 창간의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대학본부는 대학언론을 비롯한 학생자치를 탄압하는 경향이 짙다. 일방적인 행정처리는 물론, 학생자치에 대한 견제, 그리고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학보사에 대한 은근한 통제를 자행한다.
학보가 정치적인 이슈나 이념을 주로 다뤘던 20세기에는 대학 본부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21세기부터는 학내 사안과 대학의 비리를 다루는 기사가 주를 이뤄 대학 본부의 개입이 시작된 것이다. 주간교수를 통해 대학언론의 편집권과 발행권이 제한되는 환경이 지속되었고, 공론장에서 학생사회의 담론이 모여 논해지기 어려워졌다. 학내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튼튼한 공론장이 없는 점은 학생언론인들로 하여금 다시 저항의 동력을 얻게 하였다.
그 결과 ‘독립언론’이라는 형태가 발생했다. 행정적으로 학교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편집권이 학생에게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독립언론에 대한 갈망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독립언론은 기존 대학언론인들이 학보사와 교지의 한계를 느끼고, 대학언론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새로운 공론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탄생했다. 고급찌라시, 잠망경, 외대알리, 얼룩진, 성신퍼블리카 등의 미디어가 이러한 독립언론들이다.
대학은 학사구조개편이나 상대평가 강화 등 학사행정을 학생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해 왔다. 이런 조건 속에서 대학사회의 독립언론은 새로운 공론장을 열기 위한 좋은 시도로 기성 언론과 수용자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같은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이슈를 다루는 등 다양한 시도를 각 종 네트워크를 통해 벌였다. 이에 힘입어 독립언론의 창간을 지원하는 대학언론협동조합, ‘내가 학보사 노답이라 그랬잖아’, ‘전국 대학생 학보사기자 페이스북 모임’이라는 페이스북 그룹도 출현하게 되었다. 불안정한 독립언론의 기반이 연대를 통해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독립언론들은 나름의 활로를 찾고 있다.